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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1.12 컴퓨터의 역사
CS 전공/History of CS2007. 11. 12. 20:42
이 글은 개인적 선호에 따른 갈무리 차원에서 가져온 글이며, 원 출처는 http://blog.naver.com/musichuman/5745514 임을 밝혀둡니다.

1906년

AT&T, 신호 증폭 가능한 3극 진공관 특허권 사들여


신호 증폭이 불가능한 2극 진공관에 제어 전극을 추가, 약한 신호를 크게 증폭할 수 있는 3극 진공관에 대한 특허권이 개발자인 L. 드 포레스트(L. De Forest)에게서 AT&T로 넘어갔다. AT&T는 이번 특허권 획득으로 장거리 통화시의 통화 품질 문제를 다소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포레스트가 개발한 3극 진공관은 진공이 약해 오랜 시간 동안 증폭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어 실제로 쓰이려면 꽤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 에디슨의 발명품으로 시작한 컴퓨터 ≡

1883년 에디슨이 발명한 백열 전구는 진공관 개발의 단초를 제공했다. 전류가 탄소 필라멘트와 양전하로 이뤄진 금속판 사이의 진공관 속으로 흐른다는 원리를 응용해 1904년 영국의 플레밍이 라디오 수신용 2극 진공관을 만든 데 이어 1906년에는 여기에 증폭 기능을 더한 3극 진공관이 등장했다. 그러나 실생활에 응용할 수 있는 고진공 2극 진공관이 등장한 것은 그로부터 한참 뒤인 1912년이다.이렇게 발전을 거듭한 진공관은 컴퓨터 산업 초기에 데이터를 처리하는 논리 회로를 구성하고 메모리 대용으로 쓰이는 등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1939년

진공관 컴퓨터, ABC 탄생

아이오와주립대의 존 빈센트 아타나소프(John Vincent Atanasoff) 교수와 클리퍼드 베리(Clifford Berry)가 2진 구조를 가진 진공관 컴퓨터를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개발자의 이름을 따서 ABC(Atanasoff-Berry Computer)라고 명명된 이 컴퓨터는 진공관으로 구성된 논리 회로와 메모리를 갖추었으며, 천공 카드를 통해 명령어를 읽어들인다. 이 컴퓨터는 선형 방정식을 푸는 데 이용될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 처리 속도와 연산 능력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 최초의 컴퓨터는? ≡

"최초"라는 것은 역사에서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60년이 넘는 컴퓨터 역사에서 "최초의 컴퓨터"를 찾는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현대적 개념의 최초의 컴퓨터가 등장한 것으로 알려진 1930년대 후반은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어수선한 시기라 정확한 역사 기록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ABC를 최초의 컴퓨터로 꼽았다. 전기로 작동하고 수많은 진공관으로 구성된 논리 회로를 갖춰 연산이 가능하다는 것이 그 이유다. 하지만 ABC의 설계도를 살펴보면 컴퓨터에 필요한 기본 개념조차 갖추고 있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오히려 그보다 1년 앞선 1938년 독일의 콘라트 추제(Konrad Zuse)가 개발한 전기로 작동하는 기계식 컴퓨터, Z1이 컴퓨터에 좀더 가까운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따라 ABC는 "최초의 컴퓨터" 대신 "최초의 진공관 컴퓨터"로 역사에 기록됐다.

≡ 키보드 자판의 유래 ≡

현재와 같은 형태의 키보드 자판은 1867년 크리스토퍼 숄스(Christopher Latham Sholes)가 만들었다. 그는 1874년 자판 배열을 QWERTY 방식으로 바꾼 타자기를 만들기도 했는데, 현재 사용하는 키보드 배열도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1941년

콘라트 추제, 공습 때 부서진 Z1, Z2의 후속 모델 Z3 개발

콘라트 추제(Konrad Zuse)가 최초의 2진 컴퓨터, Z1과 Z2의 후속 모델인 Z3을 개발한 것으로 밝혀져 화제를 모으고 있다. 역시 콘라트 추제가 개발한 Z1과 Z2는 연합군의 독일 공습으로 파괴되었다. Z1은 콘라트 추제가 1934년 개발에 착수해 1938년에 완성한 컴퓨터로, 철판과 톱날 등 2만 개의 부품과 22비트 워드 길이로 이루어진 부동소수점 유닛으로 5초 안에 곱셈을 처리한다. 입력장치로는 천공 테이프에 2진법으로 코딩하는 10진 키보드를 사용하며 메모리는 22비트 크기의 셀 64개를 내장했다.

Z1이 파괴된 직후인 1939년, 추제는 Z1보다 빠르고 정확한 연산 능력을 지닌 Z2를 개발했다. 3Hz로 동작하는 Z2는 계전기(Relay) 800개로 각종 연산을 처리한다. 메모리는 16비트 크기의 셀 16개로 구성되었으며, 소비 전력은 1,000kW다. Z3은 600개의 계전기로 구성된 연산장치를 사용하며 1,600개의 계전기를 이용해 작업 결과를 저장한다. 부동소수점 유닛으로 곱셈은 16단계, 덧셈은 3단계, 나눗셈은 18단계로 처리, 곱셈과 나눗셈은 3초, 덧셈은 0.7초 만에 연산한다. 입력장치로는 20자리로 된 10진 키보드를 이용하며 작업 결과는 수많은 전구를 이용해 4자리의 10진수로 표시한다.


≡ 현대 컴퓨터의 이론을 세운 Z1 ≡

콘라트 추제의 Z1은 최초의 컴퓨터라는 영예와 더불어 현대 컴퓨터의 이론을 정립한 컴퓨터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콘라트 추제는 1936년부터 입력장치와 연산장치, 기억장치, 출력장치, 레지스터 등 데이터 처리 단계를 세분화한 Z1을 설계하고, 데이터 처리를 담당하는 프로그래밍 언어에 대한 연구를 병행했다.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Z 시리즈 중에 Z1(1938년), Z2(1939년), Z3(1944년)은 모두 폭격으로 파괴되었는데, 이 중 Z1은 1986년부터 1989년까지 3년간의 복원 작업을 거쳐 독일의 베를린 크리츠버그박물관에 보관되어 있고, 1950년에 콘라트 추제가 만든 확장형 모델인 Z4는 취리히은행에서 쓰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참고로 Z1의 원래 이름은 V1이었으나 추제의 친구가 로켓을 개발한 뒤 V1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바람에 Z1로 바꿨다.


1944년

하버드 졸업생, 계전기 이용한 마크Ⅰ 개발

하버드대학 졸업생인 해럴드 H. 아이켄(Harold H. Aiken)이 IBM과 손잡고 계전기를 이용한 2진 컴퓨터 하버드 마크Ⅰ을 개발했다. 하버드 마크Ⅰ은 계전기와 회전축, 클러치 등 76만 5,299개의 부품으로 이루어진 컴퓨터로, 길이 15m, 높이 2.4m의 케이스에 10진수 저장용 휠 300개와 회전 다이얼 스위치 1,400개, 그리고 총 연장 8,045km의 전선을 내장해 무게가 5톤에 이른다.

하버드 마크Ⅰ은 천공 카드의 데이터를 순차적으로 처리하는 방식이며, 사칙 연산은 물론 삼각법 함수 계산 등 복잡한 연산까지 처리할 수 있다. 23자릿수 덧셈은 0.3초, 곱셈은 5.7초, 나눗셈은 15.3초에 처리한다. 한편 하버드 마크Ⅰ을 공동 개발한 IBM은 이 컴퓨터에 ASCC(Automatic Sequence Controlled Calculator)란 이름을 붙이고 사내 업무용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1946년

진공관 컴퓨터 애니악, 애물단지 되나?


펜실베이니아대학의 존 W. 모클리(John W. Mauchly)와 J. 프레스퍼 에커트(J. Presper Eckert)가 만든 초대형 진공관 컴퓨터, 애니악(Electronic Numerical Integrator And Calculator)이 설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애니악은 미군탄도연구소의 의뢰로 1943년부터 개발에 착수, 올해 완성되었으나, 전쟁이 끝남에 따라 이용 목적이 사라져 애물단지로 전락할 신세에 놓였다.

애니악은 1만 7,468개의 진공관과 130km에 달하는 전선을 사용, 무게가 30톤에 달하는 프로그램 내장형 컴퓨터로, 데이터를 부호 형식으로 바꿔 천공 카드에 기록하며, 메모리 없이 진공관으로 구성된 20개의 레지스터로 이루어져 있다. 처리 속도는 보통 7시간 정도 걸리는 계산을 3초 만에 해낼 정도로 우수하다. 덧셈은 200마이크로초(1마이크로초=100만분의 1초), 곱셈은 300밀리초(1밀리초=1,000분의 1초), 나눗셈은 30밀리초 만에 처리한다.
미군탄도연구소는 애니악을 펜실베이니아대학의 무어학교에 설치하는 문제를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1946년을 빛낸 또 다른 사건 ≡

프레디 C. 윌리엄스(Freddie C. Williams)가 음극선관(Cathode-ray Tube)을 이용해 램(Random Access Memory)을 개발하고 이에 대한 특허권을 출원했다.

1947년

실리콘 기반 트랜지스터 개발

지난 12월 벨연구소의 존 바딘(John Bardeen)과 윌리엄 쇼클리(William Shockley), 그리고 발터 브래타인(Walter Brattain)이 반도체 격자 구조의 시편(試片)에 가는 도체선을 접촉시키면 전기 신호가 증폭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여기에 트랜지스터라는 이름을 붙였다. 증폭된 전기 신호에 따라 레지스터나 반도체가 되기 때문에 트랜스퍼(Transfer)와 레지스터(Resister)를 합성한 트랜지스터라고 명명한 것이다.

반도체 재료로 쓰이는 게르마늄으로 만든 트랜지스터는 진공관보다 제조 비용과 소비 전력이 적은데다가 크기까지 작아 실용성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


≡ 트랜지스터로 노벨상까지 ≡

1956년 노벨상은 트랜지스터 개발자들에게 돌아갔다. 3개의 다리 구조로 된 트랜지스터는 지속적으로 개량되었고 마침내 1954년 텍사스인스트루먼츠가 게르마늄보다 훨씬 저렴한 실리콘으로 트랜지스터를 만들면서 대량 생산되기 시작했다.

1947년

IBM 개발 ASCC 후속 모델 SSEC, 성능 검증 테스트 통과

IBM이 지난 1월 24일, 1944년 선보인 ASCC의 후속 모델, SSEC(Selective Sequence Electronic Calculator. 하버드 마크Ⅱ라고 부르기도 한다)를 발표했다. SSEC는 1만 3,000개의 진공관으로 구성된 논리 회로를 갖추어 덧셈을 4밀리초 만에 처리하며, 제어 기능은 2만 3,000개의 계전기가 담당하고 66개의 종이 테이프를 통해 명령어를 읽어들인다.

SSEC는 1월 28일 실시된, 1952년부터 1971년까지 달의 위치를 12시간 간격으로 계산하는 실험에서 오차 없이 정확한 결과를 도출해 냈다.


≡ 자기 드럼 메모리 등장 ≡

1948년 앤드류 도널드 부스(Andrew Donald Booth)가 자성을 가진 자기 드럼 메모리를 발표했다. 이 메모리는 길이와 폭이 각각 2인치로, 인치당 10비트를 저장할 수 있다. 1952년부터 판매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가격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1949년

프로그램 내장형 컴퓨터, 에드삭 선보여

모리스 윌키스(Maurice Wilkes)가 프로그램 내장형 컴퓨터인 에드삭(EDSAC : Electronic Delay Storage Automatic Calculator)을 선보였다. 에드삭은 간단한 프로그램을 천공 카드에 기록해 놓은 서브루틴(폰 노이만이 개발한 짧은 프로그램 라이브러리 모음)을 내장했으며, 진공관으로 구성된 연산장치를 통해 초당 714번 명령을 수행한다.

에드삭에 대한 연구가 시작된 곳은, 펜실베이니아대학이 1946년부터 여름에만 운영한 무어학교였으나 이를 완성한 곳은 케임브리지대학이다.


≡ 최초의 컴퓨터 게임은 체스? ≡

1949년 MIT의 클라우드 셰넌(Claude Shannon)이 발명한 체스 기계는 컴퓨터 게임의 모태가 되었다. 본격적인 컴퓨터 게임이 개발된 것은 그로부터 10년 뒤의 일이며, 컴퓨터가 인간과 체스 대결을 벌이기까지는 다시 30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1951년

페란티, 마크Ⅰ 판매 시작

지난 2월 맨체스터대학이 페란티와 손잡고 최초의 상용 컴퓨터인 페란티 마크Ⅰ을 개발한 것으로 알려져 화제다. 맨체스터대학은 이미 지난 1948년 베이비(Baby)라는 애칭의 SSEM(Small-Scale Electronic Machine)을 개발한 바 있다. 맨체스터대학은 이 개발에 참여한 핵심 연구원인 지오프 투틸(Geoff Tootill)과 알렉 로빈슨(Alec Robinson)을 페란티에 합류시켜 산학 협동으로 페란티 마크Ⅰ을 만들었다.페란티 마크Ⅰ은 3,300개의 진공관과 2,500개의 캐퍼시터로 설계되어 있다. 디스플레이 역할을 하는 음극선관 메모리에는 A4 용지 8장(음극선관 1개에 128비트 기록) 분량을 저장할 수 있으며, 2개의 자기 드럼에는 A4 용지 512장 분량을 0.03초 내에 저장할 수 있다. 페란티 마크Ⅰ은 덧셈과 뺄셈 계산에는 1.2밀리초, 곱셈에는 2.16밀리초가 걸린다. 천공 카드에 기록된 명령어를 초당 200문자씩 읽어들이며, 처리 결과는 텔레프린터나 천공 테이프, 패럴렐 프린터 등을 통해 출력한다.페란티는 페란티 마크Ⅰ의 가격을 35만 달러로 책정하고 조만간 판매를 위한 홍보 브로슈어를 각 대학에 배포할 예정이다.


≡ 최초의 상업용 컴퓨터 ≡

최초의 상업용 컴퓨터는 유니백(UNIVAC)인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페란티 마크Ⅰ이 먼저다. 최근에는 레오Ⅰ이 최초의 상업용 컴퓨터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유니백과 페란티 마크Ⅰ, 레오Ⅰ은 모두 1951년 선보였으나 일부 자료에는 유니백이 1950년 발표된 것으로 기록돼 있어 논란의 불씨가 되고 있는 것이다. 기록을 살펴보면 페란티 마크Ⅰ은 1951년부터 1957년까지 모두 9대를 팔았는데, 그 중 1∼2대는 정부기관에, 3대는 외국(네덜란드, 이탈리아, 캐나다)에 공급됐다고 한다.
한편 업무용 컴퓨터인 레오는 개발은 T. 레이먼드 톰슨(T. Raymond Thompson)과 존 시몬스(John Simmons)가, 판매는 J.리온스앤컴퍼니가 맡았다.


(1951년)

스페리랜드, 유니백 발표

스페리랜드의 개발 부서인 레밍턴랜드는 새로운 진공관 컴퓨터, 유니백(UNIVAC : UNIversal Automatic Computer)을 개발하고 조만간 시판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5,400개의 진공관과 1만 8,000개의 크리스털 다이오드로 구성된 유니백은 덧셈은 120마이크로초, 곱셈은 1,800마이크로초, 나눗셈은 5,600마이크로초에 처리하는 매우 빠른 컴퓨터로, 부동소수점 연산은 서브루틴 형식으로 처리하며 데이터 입력에는 유니타이퍼라는 입력 스위치와 천공 카드를, 데이터 출력에는 천공 카드와 프린터를 이용한다.

유니백의 기본 가격은 95만 달러이며, 주변기기는 임의로 선택할 수 있다.


≡ 폭넓게 활용된 유니백 ≡

유니백은 주로 관공서와 연구소에서 쓰였다. ARMR맵제작소를 비롯해 뉴욕대학의 AEC컴퓨팅기지, 캘리포니아대학의 라디에이션연구소, 워싱턴의 공군본부, 오하이오의 EQ항공사령부 등에서 사용했으며, 미국 인구조사국에서 인구 통계를 내는 데 사용했다는 기록도 있다.

1953년

IBM, 701 내놓고 컴퓨터 사업에 참여

IBM이 701을 발표하며 컴퓨터 사업에 뛰어들었다. 701은 과학 및 기술 관련 데이터를 순차적 혹은 부분적으로 동시 처리하는 고급 컴퓨터로, 고정소수점 연산에 사용한다. 4,000개의 진공관과 1만 2,800개의 크리스털 다이오드로 구성되어 덧셈에는 50마이크로초, 곱셈과 나눗셈에는 444마이크로초가 걸리며, 데이터 기록에는 자기 코어와 음극선관, 자기 드럼 등을 이용한다. 참고로 자기 메모리 코어는 1952년 MIT에서 훨윈드(Whirwind) 코어 메모리라는 이름으로 개발되었다.


≡ IBM, SSEC 개발자에 공개, 컴퓨터 발전에 도움 ≡

IBM은 701 모델을 발표하면서 기존 모델인 SSEC를 누구나 써볼 수 있도록 공개해 컴퓨터 개발에 큰 도움을 줬다. IBM 701은 연구소와 항공기 회사 등에 모두 19대가 팔리는 기염을 토했다.

IBM, 공학 계산용 프로그래밍 언어, 포트란 개발 착수

IBM이 IBM 704에서 사용할 공학 계산용 프로그래밍 언어, 포트란(FORmula TRANsfer, 수식 변환기)을 개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IBM 701에서 사용하는 스피드 코딩을 연구한 존 배커스(John Backus)를 포함한 6명의 연구원들이 개발에 참여하는 포트란은 +와 - 같은 일반 산술 부호를 쓸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기초적인 수학 함수를 그대로 불러오는 것도 가능한 고급 언어다. IBM은 컴파일러가 완성되는 대로 IBM 704를 구입한 고객에게 무상 공급할 것이라고 밝혔다.


≡ 컴파일러 없는 프로그래밍 언어, 실제 완성은 3년 뒤 ≡

포트란은 처음 설계 당시에는 컴파일러가 없었다. 컴파일러가 등장한 것은 그로부터 3년 뒤인 1957년. 최초의 프로그래밍 언어는 IBM 701에서 사용하던 스피드 코딩이라는 주장과 포트란이라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지만, 두 언어 모두 존 배커스가 설계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IBM의 자기 드럼 계산기 650, 불티나게 팔려

IBM이 지난 12월 개발한 자기 드럼 데이터 계산기, IBM 650이 올해에만 450대가 팔려나가는 호조를 보이고 있다. 이 650은 2,000개의 진공관과 분당 1만 2,500회 회전하는 자기 드럼을 저장장치로 쓰고 있으며, 덧셈에는 672마이크로초, 곱셈에는 2,210마이크로초, 나눗셈에는 6,000마이크로초가 걸린다. 자기 테이프는 701 시스템과 호환이 가능하며 데이터 입력에는 천공 카드, 출력에는 자기 드럼이나 프린터를 사용한다.

IBM은 650의 판매가 이처럼 호조를 띠는 것은 "701보다 훨씬 저렴한 유지비용" 덕분인 것으로 분석된다.

1954년

IBM, 공학 계산용 프로그래밍 언어, 포트란 개발 착수

IBM이 IBM 704에서 사용할 공학 계산용 프로그래밍 언어, 포트란(FORmula TRANsfer, 수식 변환기)을 개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IBM 701에서 사용하는 스피드 코딩을 연구한 존 배커스(John Backus)를 포함한 6명의 연구원들이 개발에 참여하는 포트란은 +와 - 같은 일반 산술 부호를 쓸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기초적인 수학 함수를 그대로 불러오는 것도 가능한 고급 언어다. IBM은 컴파일러가 완성되는 대로 IBM 704를 구입한 고객에게 무상 공급할 것이라고 밝혔다.


≡ 컴파일러 없는 프로그래밍 언어, 실제 완성은 3년 뒤 ≡

포트란은 처음 설계 당시에는 컴파일러가 없었다. 컴파일러가 등장한 것은 그로부터 3년 뒤인 1957년. 최초의 프로그래밍 언어는 IBM 701에서 사용하던 스피드 코딩이라는 주장과 포트란이라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지만, 두 언어 모두 존 배커스가 설계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1954년

IBM의 자기 드럼 계산기 650, 불티나게 팔려

IBM이 지난 12월 개발한 자기 드럼 데이터 계산기, IBM 650이 올해에만 450대가 팔려나가는 호조를 보이고 있다. 이 650은 2,000개의 진공관과 분당 1만 2,500회 회전하는 자기 드럼을 저장장치로 쓰고 있으며, 덧셈에는 672마이크로초, 곱셈에는 2,210마이크로초, 나눗셈에는 6,000마이크로초가 걸린다. 자기 테이프는 701 시스템과 호환이 가능하며 데이터 입력에는 천공 카드, 출력에는 자기 드럼이나 프린터를 사용한다. IBM은 650의 판매가 이처럼 호조를 띠는 것은 "701보다 훨씬 저렴한 유지비용" 덕분인 것으로 분석된다.


1955년

프로그래밍 언어와 별도로 실행되는 프로그램 개발 한창

IBM 701을 위한 입출력(I/O) 제어 프로그램을 개발해 온 제너럴모터스가 최근 NAA(North American Aviation)와 합작으로 704용 프로그램 개발에 한창이다. 이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IBM 701과 704 등에서 프로그래밍 없이도 입출력을 제어할 수 있어, 컴퓨터를 쓸 때마다 매번 프로그래밍이 필요한 예전의 입출력 프로그램들과 달리 별도의 프로그래밍 없이 컴퓨터가 자동으로 작업을 처리하는 일괄 처리(Batch Processing)가 실현될 전망이다.


≡ 운영체제의 기본틀 잡히다 ≡


운영체제다운 운영체제는 1960년대 들어서야 등장하지만 기본 입출력을 제어하는 시스템은 이미 그 전에 모습을 드러냈다. 제너럴모터스와 NAA가 만든 GM-NAA I/O는 1956년 완성됐다.


1956년

IBM, 비순차적 저장장치 RAMAC 305 개발


IBM이 지난 9월 13일 천공 카드와 자기 테이프, 자기 드럼처럼 순차적으로 읽고 쓰는 방식이 아닌 새로운 방식의 저장장치, RAMAC(Random Access Method of Accounting and Control) 305를 개발했다. RAMAC 305는 비순차적인 데이터를 빠르게 저장하고 읽어들일 수 있는 장치로, 직경 20인치의 디스크 50개로 구성되어 있다. 총 저장 용량은 5MB, 무게는 1톤, 가격은 3만 6,000달러다.

≡ RAMAC이 PC용 하드디스크가 되는 데 걸린 기간은? ≡

최초의 하드디스크, RAMAC의 크기는 요즘 집에서 쓰는 냉장고 2개를 합한 정도였다. 최초의 PC용 하드디스크는 1980년 시게이트가 처음 개발했으니 RAMAC이 PC용 하드디스크가 되는 데는 무려 24년이 걸린 셈이다.


1956년

MIT, 트랜지스터 컴퓨터 개발 뒤늦게 알려져

MIT의 링컨연구소 연구원들이 진공관 대신 트랜지스터를 이용해 일반 사용자용 트랜지스터 컴퓨터를 만든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TX-0(Transistorized eXperimental computer)라고 불리는 이 컴퓨터는 프로그래밍이 가능하며, MIT가 개발한 자기 코어 메모리를 장착하고 진공관과 비슷하게 생긴 유리병에 트랜지스터 회로를 담았다.

≡ 큰 역할을 한 TX-0 ≡

트랜지스터 컴퓨터 역시 "최초"에 대한 논쟁을 피해갈 수 없다. 하지만 사실이야 어찌되었든 TX-0이 컴퓨터 역사에서 큰 역할을 하고 사라진 것만은 분명하다. CNN 자료에 따르면 TX-0은 인터랙티브 컴퓨터 기능을 갖춰 그래픽과 네트워크, 인터넷 등을 개발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현재 최초의 트랜지스터 컴퓨터는 TX-0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맨체스터대학은 1953년 그들이 먼저 트랜지스터 컴퓨터를 개발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맨체스터대학이 자체적으로 트랜지스터를 만들어 사용했는지 여부는 밝히지 않았다. 트랜지스터가 양산되기 시작한 것은 발표된 이듬해인 1954년부터다.

1960년

쉽게 짤 수 있는 컴퓨터 프로그램 언어, 코볼 등장

대화를 나누듯 프로그래밍할 수 있는 컴퓨터 언어가 개발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 컴퓨터 제조사와 미 국방성 관계자로 구성된 CODASYL(COnference on DAta SYstem Language)이 지난해부터 프로그래밍을 좀더 쉽게 할 수 있는 컴퓨터 언어를 연구해 코볼(COmmon Business Oriented Language)을 내놓은 것.이번에 발표된 코볼-60은 일반 사무용으로 설계된 프로그램 언어로, 사람이 쉽게 프로그램을 이해할 수 있도록 영어 구어체를 사용한다. 특히 호환되지 않는 컴퓨터에서도 일부 프로그램만 고치면 컴파일러를 그대로 쓸 수 있는 것이 장점으로 꼽힌다.
CODASYL은 올 12월부터 코볼 초판을 배포할 계획이며, 코볼이 정착할 수 있도록 프로그래밍 언어 체계 보완 작업을 계속할 계획이다.


≡ 코볼은 매년 발전했다 ≡


코볼은 매년 발전을 거듭해 8년 뒤인 1968년 미국에서 사무 처리 언어 표준으로 선정됐다. 1974년에는 표준 프로그램으로 등록되지만 이후부터는 별다른 발전이 없어 인기도 시들해졌다. 자극을 받은 CODASYL이 1985년 COBOL-85를 제정했지만 이미 시기를 놓쳐 요즘은 거의 쓰이지 않는다.


1961년

IBM, 컴퓨터 시장 "꽉" 잡아

<<데이터메이션>>은 얼마 전 현재 전체 컴퓨터 시장의 81.2%를 IBM이 장악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IBM은 지난 1953년 최초의 전자식 컴퓨터인 IBM 701을 시작으로 IBM 650, IBM 7000, IBM 1400 시리즈 등 다양한 컴퓨터를 판매해 왔다. 특히 지난해 발표한 1400 시리즈의 첫 모델인 1401 메인프레임은 진공관 수를 줄이고 트랜지스터 비율을 늘여 덩치를 줄였을 뿐 아니라 자기 메모리까지 내장, 판매량을 부쩍 늘렸다. IBM은 이런 추세라면 1400 시리즈 판매량이 1만 대를 넘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 IBM 1400은 정말 많이 팔았나? ≡

IBM 1400 시리즈는 단종 직전까지 모두 1만 2,000대 가량 팔렸다.


1961년

IBM, 슈퍼컴퓨터급 성능 지닌 7030 판매

IBM이 슈퍼컴퓨터급 성능을 지닌 7030 모델을 내놓았다. 스트레치(Stretch)라는 애칭을 가진 7030은 트랜지스터 16만 9,100개가 집적되어 있으며 64비트 워드 코어 메모리를 장착했다. 또 여러 개의 명령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파이프라인(Pipelining) 기술을 비롯해 메모리 보호, 메모리 버스, 멀티프로그래밍 등 갖가지 신기술로 무장했다. IBM 7030은 1초에 명령어 100만 개를 처리하고 부동소수점 덧셈은 1.5나노초, 곱셈은 2.4나노초 안에 연산한다.
IBM 7030의 첫 주인은 로스알라모스과학연구소이며, 가격은 700만 달러인 것으로 알려졌다.


1962년

PDP-1에서 즐기는 최초의 컴퓨터 게임, 스페이스워! 탄생

세계 최초로 컴퓨터에서 즐길 수 있는 게임이 나왔다. MIT 미디어연구실의 스티브 러셀(Steve Russell)과 앨런 코톡(Alan Kotok), 야크 그라에츠(Shag Graetz) 등 해커 3명이 미니 컴퓨터인 PDP-1로 제작한 스페이스워!가 그 주인공.

스페이스워!는 우주 공간에서 로켓을 조종해 멀리 떨어진 적함을 미사일로 격추하는 비디오 게임으로, 게임 화면은 조이스틱으로 조작한다. 이 게임은 중앙에 강력한 중력을 지닌 태양이 있어 미사일로 곧바로 적 우주선을 격추하려면 고생깨나 해야 한다고. 참고로 화면에 등장하는 우주선 2개는 별보다 조금 더 크다.

컴퓨터 게임은 원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컴퓨터를 보다 쉽게 쓸 수 있게 할 목적으로 고안됐다. 하지만 실제로 본격적인 게임이 만들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PDP-1은 게임기? ≡

미니 컴퓨터인 PDP-1은 1960년 처음 선보인 이후 모두 50대가 팔렸다. 이 컴퓨터에서 실행된 최초의 게임 스페이스워!는 훗날 "최초의 상업용 게임기"로 다시 제작된다. 참고로 기사에서 사용한 "해커"라는 용어는 당시에는 "광적인 연구자"라는 의미로, 존경을 담은 애칭으로 쓰였다.


1963년

미국 표준 코드, 아스키 공식 발표

ASA(America Standard Association, 미국표준협회)가 컴퓨터의 코드 체계를 통일한 아스키코드(ASCII : American Standard Code for Information Interchange)를 발표했다.
아스키코드란 영문 알파벳과 아라비아 숫자, 특수 문자 등 128개의 문자 조합에 대응하는 컴퓨터 코드를 0과 1로 표시한 7비트 코드로, 아스키코드가 제정되기 전에는 컴퓨터 업체마다 각각 다른 문자 쌍을 사용(IBM은 9개의 문자 쌍 사용)하는 탓에 컴퓨터끼리 데이터를 교환할 수 없었다. 컴퓨터 코드를 통일, 이런 문제를 해결하자는 제안에 따라 1961년 ASA에서 컴퓨터 제조사 모임인 X3.4 위원회를 소집, 본격적인 연구에 착수한 아스키코드는 유예 기간 2년을 거쳐 올해 공식 발표된 것이다.
이번 아스키코드 발표로 그 동안 컴퓨터 업체마다 각기 다르게 적용하던 코드 체계를 통일, 데이터 호환성이 크게 높아질 전망이다.

≡ 왜 아스키라고 발음할까? ≡

"ASCII"는 "아스키"라고 발음한다. "CII"를 "키"라고 발음하는 것은 억지에 가까운데도 그렇게 읽는 것은 맨 처음 발표하면서 붙인 "AS-KEE"라는 이름을 그대로 적용했기 때문이다.
1958년

컴퓨터로 수백 개의 레이더 시스템 연결

미국과 캐나다의 레이더가 SAGE(Semi-Automatic Ground Environment)라고 불리는 시스템으로 연결된다. 미국과 캐나다의 하늘을 감시하는 모든 레이더 기지를 AN/FSQ-7 컴퓨터로 연결해 대공 방어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기로 한 것이다. AN/FSQ-7은 MIT가 개발한 훨윈드Ⅱ 컴퓨터의 다른 이름으로, 실시간 데이터 처리 능력을 갖췄다.
AN/FSQ-7과 연결된 레이더 기지에서 레이더를 조작하면 관련 정보가 컴퓨터로 전송되도록 하기 위해 무려 2,525만km의 통신 선로가 구축되었다.


≡ 최초의 대규모 통신 네트워크, SAGE ≡

중앙 통제 컴퓨터를 두고 수많은 클라이언트를 연결해 컴퓨터망을 갖춘 것은 SAGE가 처음이다. 이 시스템은 1980년대 초반까지 운영됐으나 요즘 네트워크 시스템처럼 패킷을 전송하거나 프로토콜을 이용했다는 기록은 없다. 한편 훨윈드Ⅱ와, 각 레이더 기지에 있는 제어 장치의 CRT 표시 창에 뜬 그래프가 최초의 컴퓨터 그래픽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1958년

게르마늄 IC에 이어 실리콘 IC 개발

지난해 게르마늄 IC(Integrated Circuit, 집적 회로)가 개발된 데 이어 올해에는 실리콘 IC가 개발됐다.
1958년 텍사스인스트루먼츠의 잭 킬비(J. Kilby)는 반도체 물질에 레지스터와 캐퍼시터 기능을 한데 묶은 IC를 만들었다. 이 IC는 전선으로 연결된 소자 5개와 게르마늄 조각으로 이뤄져 있는데, 문제는 게르마늄의 가격이 비싼데다가 수작업으로 전선을 일일이 연결해야 하다는 것.
하지만 이번에 페어차일드반도체의 로버트 노이스(Robert Noyce)와 잭 킬비가 함께 개발한 실리콘 IC는 칩 위의 절연 실리콘 표면에 전도 채널을 직접 입히기 때문에 텍사스인스트루먼츠의 게르마늄 IC보다 제조 비용과 생산성 면에서 훨씬 효율적이다. 페어차일드반도체는 앞으로 IC에 더 많은 부품을 집적할 수 있도록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1960년

AT&T, 전화로 컴퓨터 데이터 주고받는 데이터폰 개발

통신 전문 업체인 AT&T가 컴퓨터를 전화로 연결해 데이터를 전송하는 데이터폰을 개발했다. AT&T의 데이터폰은 컴퓨터에서 쓰이는 디지털 데이터를 아날로그 신호로 바꾸는 첨단 장치다. 이 장치를 이용하면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 컴퓨터에도 데이터를 보내거나 받아 처리할 수 있다.AT&T는 앞으로 데이터폰을 응용한 동기화 기술(Equalization Techniques)과 광대역 보호(Bandwidth-Conserving) 변조 시스템이 통신 효율을 더 높여줄 것이라고 자신했다. 데이터폰 패키지에는 벨연구소의 디지털 데이터 세트가 포함되어 있다.


≡ 데이터폰은 최초의 모뎀 ≡

데이터폰은 모뎀이라는 용어만 쓰지 않았을 뿐 기본적인 구조는 모뎀과 똑같다. 하지만 당시 사진 자료를 보면 모뎀이라기보다는 전화기에 가깝다.


1960년

크기가 대폭 작아진 PDP-1 판매 시작

크기가 혁신적으로 줄어든 컴퓨터가 출시되었다. DEC(Digital Equipment Corporation)이 지난해 개발한 컴퓨터 PDP(Programmed Data Processor)-1이 드디어 시장에 모습을 드러낸 것. 가격은 12만 달러다. 이번에 출시된 PDP-1은 기존 모델보다 크기가 훨씬 작아서 열을 따로 식힐 때 필요한 에어컨이 필요 없을 뿐 아니라 음극선관 그래픽 출력장치를 내장, 모니터로 시스템을 운영할 수 있어 관리자 1명이면 충분히 다룰 수 있다. PDP-1은 IBM 7090보다 가격은 조금 저렴하지만 효율성은 훨씬 높다고 한다.

참고로 PDP-1을 개발한 DEC은 1957년 8월 설립한 컴퓨터 전문 기업으로 본사는 매사추세츠에 있다.


≡ PDP-1은 정말 작았다? ≡

PDP-1은 미니 컴퓨터 개념을 처음 도입한 컴퓨터로, 크기가 작은 장롱만했다. 요즘 PC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덩치가 크지만 이전의 컴퓨터에 비하면 혁신적으로 작은 크기다. 음극선관 그래픽 출력장치는 요즘 일반 모니터와 비슷하지만 형태는 사각형이 아닌 원형에 가깝다.


1964년

IBM System/360 베일 벗었다

지난 4월 7일, IBM의 CEO 토마스 J. 웟슨(Thomas J. Whatson)은 "모든 방면에서 뛰어난 제3세대 컴퓨터"라는 의미를 담은 System/360을 공식 발표했다. IBM이 야심차게 준비한 새로운 컴퓨터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System/360은 범용성과 호환성을 겸했을 뿐 아니라 부속 시스템도 잘 갖춰놓아서 기능성과 유연성을 두루 갖췄다고 평가받는다. 또 포괄적인 제어 기능과 PL/1 프로그래밍 언어, 컴파일러 등을 모두 탑재한 운영체제 OS/360을 사용했다. 가격도 비교적 저렴한 수준이다. 한 달에 2,500달러를 내면 제품을 빌려 쓸 수도 있다(1965년 당시 고급 자동차인 포드 무스탕의 가격).OS/360의 개발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개발 투입 인원을 늘릴수록 작업 속도가 느려진 탓이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50억 달러의 도박"으로 불리는 System/360이 완성됐고, 지금까지 소프트웨어를 하드웨어의 부속품 정도로 취급하던 사용자의 인식을 바꿔놓는 데 성공했다.아무튼 이번 System/360의 발표로 IBM이 과연 "기업가와 과학자를 동시에 만족시켜 줄 새로운 컴퓨터 기종을 내놓겠다."던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 세인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System/360으로 컴퓨터 산업 주도자로 부상한 IBM ≡

IBM 컴퓨터는 예전에도 시장 점유율이 높았으나 System/360을 내놓으며 컴퓨터 시장에서 부동의 1위 자리를 굳힌다. IBM의 기존 컴퓨터를 쓰던 기업 고객 역시 주저 없이 System/360을 구입했다. 덕분에 IBM은 2년 만에 50억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투자금을 모두 회수했을 뿐 아니라 후속 시리즈가 승승장구하는 기반을 닦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IBM이 얻은 가장 큰 소득은 System/360이 컴퓨터 산업을 대표하는 키워드로 인정받았다는 것이다.


1964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컴퓨터, CDC 6600 등장

세계에서 가장 빠른 초고속 컴퓨터가 나왔다. 치피와 폭포 부근에 있는 CDC가 1초에 300만 개의 명령을 실행할 수 있는 슈퍼컴퓨터 CDC 6600을 개발한 것.35만 개의 트랜지스터로 이루어진 CDC 6600은 100나노초 속도로 동작하며 여러 개의 명령을 동시에 수행하는 병렬 연산 방식을 쓴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이외에도 시스템의 열을 식히기 위한 프레온 냉각 시스템과 음극선관 그래픽 출력장치(CRT)를 채택하고, 메모리로는 65K 60비트 워드 메모리를, 저장장치로는 대형 디스크와 6개의 고속 드럼을 사용했다.CDC는 1957년 유니백 1103 개발 책임을 맡았던 시모어 크레이(Saymour Cray)가 설립한 대형 컴퓨터 전문 제조회사로, 지난 1958년 선보인 IBM의 704보다 빠른 CDC 1604(트랜지스터 컴퓨터)를 생산하기도 했다. 참고로 CDC 6600은 CDC 1604보다 처리 속도가 20배 가량 빠르다.


≡ 게임 개발에 이용된 슈퍼컴퓨터 ≡

CDC 6600의 엔지니어는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야구와 달 착륙, 스페이스워! 등의 게임을 제작했다.


1964년

배우기 쉬운 프로그래밍 언어, 베이식 등장

영국 다트머스대학의 토마스 커츠(Thomas Kurtz)와 존 케메니(John Kemeny) 교수가 학생들이 간단하게 구현할 수 있는 배우기 쉬운 프로그래밍 언어, 베이식(Beginner"s All-purpose Symbolic Instruction Code)을 개발했다.그 동안 표준 프로그래밍 언어처럼 사용된 포트란과 알골은 전문 프로그래머만 쓸 수 있었지만 베이식은 구조가 간단해 누구나 쉽게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게 돕는다. 베이식은 5월 1일 새벽 4시 처음 실행됐다.


1964년

IBM, 아메리카항공에 온라인 업무 처리 시스템 납품

IBM이 온라인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세이버(SABRE : Semi-Automated Business Research Environment)를 아메리카항공에 공급하기로 했다. 이번 결정에 따라 앞으로 가까운 여행사를 통해서도 비행기 좌석을 예약할 수 있게 됐다.세이버는 IBM이 1953년부터 개발해 온 것으로, 65개 도시의 터미널 2,000개와 IBM 7090을 전화선으로 연결, 데이터를 단 3초 만에 처리한다.
아메리카항공의 세이버 시스템에는 트랜잭션 모니터와, 데이터베이스 매니저로 구성된 항공사 통제 프로그램(ACP : Airline Control Program)을 운영체제로 설치했다. 항공사측은 이 시스템을 온라인 좌석 예약에 활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1965년

DEC, PDP-5에 이은 PDP-8 발표

컴퓨터의 크기를 혁신적으로 줄인 PDP-1의 세 번째 시리즈, PDP-8이 선보였다. DEC이 발표한 미니 컴퓨터 PDP-8은 12비트 처리 방식과 4KB의 메모리를 갖췄으며 프로그램 작성에는 어셈블러와 포트란을 이용한다. PDP-8은 IBM System/360보다 속도는 떨어지지만 크기와 경제성이 크게 앞서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가격은 1만 8,000달러.


≡ 성공한 미니컴퓨터 PDP-8 ≡

DEC의 PDP 시리즈 가운데 가장 잘 팔린 모델은 PDP-8. 이런 PDP-8의 호조에 자극을 받은 후지쯔가 FACOM 230-15를 내놓았고, 그 뒤를 이어 IBM가 S/3 같은 소형 시스템을 선보이면서 미니 컴퓨터 시장은 활황세를 타기 시작했다.


1966년

컴퓨터 신호 구분하는 수신기 개발

스탠퍼드연구소의 존 반 기엔(John Van Geen)이 컴퓨터 신호와 일반 전화 신호를 분리할 수 있는 수신기를 개발했다. 기엔의 수신기는 장거리 전화선을 통해 들어온 신호가 일반 음성 신호가 아닌 데이터 신호면 다른 소리내는 식으로 컴퓨터 신호를 구분한다. 이 장치가 개발됨에 따라 전화선을 이용한 컴퓨터 데이터 전송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 최초의 모뎀은 아니지만… ≡

기엔의 수신기는 AT&T가 개발했던 최초의 모뎀을 개선한 것으로, 구체적인 형태를 갖춘 최초의 모뎀으로 기억되고 있다.
1969년

RS-232-C, 표준 통신 포트 채택

RS-232-C가 컴퓨터와 주변기기의 표준 통신 프로토콜로 채택되었다. RS-232-C 프로토콜은 컴퓨터와 주변기기가 한 번에 1비트씩 데이터를 연속적으로 주고받을 수 있는 통신 규약으로, 앞으로 그 쓰임새가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RS-232-C 커넥터는 25개의 핀으로 이뤄져 있다.


1971년

최초의 개인용 미니 컴퓨터 켄백-1 판매 나서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 켄백-1(Kenbak-1)이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Scientific American"에 광고를 싣고 판매를 시작했다.
존 V. 블랭켄베이커(John V. Blankenbaker)가 설계한 켄백-1은 키보드 대신 스위치를 입력장치로 사용하고, 데이터는 256바이트 메모리에 저장한다. 가격은 750달러이며 주문제로 판매한다.

≡ 켄백-1은 몇 대나 팔렸나? ≡

켄백-1은 켄백이 1973년 문을 닫을 때까지 모두 40대가 팔렸다.

1971년

인텔, 일반용 마이크로프로세서 4004 최초 개발

인텔이 세계 최초로 일반용 4비트 마이크로프로세서 4004를 상용화한다.
4004는 인텔의 테드 오프(Ted Hoff)와 스탄 메이저(Stan Mazor)가 1969년부터 일본의 계산기 생산업체인 비지콤의 의뢰를 받아 개발한 4비트 마이크로칩으로, 2,300개의 트랜지스터를 집적하고 108kHz 클록으로 동작하며 640바이트의 메모리를 갖추고 있다.인텔의 마이크로프로세서 설계팀을 이끄는 페더리코 페긴(Federico Faggin)은 이 4004 칩에다가 4001 롬 칩, 4002 램 칩, 4003 레지스터 칩을 탑재한 프로그래머블 계산기, MCS-4를 완성했다.이 과정에서 인텔은 마이크로프로세서의 발전 가능성을 고려해 비지콤에게 받은 개발비 6만 달러를 되돌려주는 대신 4004의 판매권을 얻어 11월 15일 개당 299달러에 판매를 시작했다. 참고로, 인텔은 1968년에 설립된 주문형 반도체 전문 제작업체다.

≡ 광고까지 했던 4004 ≡

4004는 마이크로프로세서로서는 최초로 "일렉트로닉 뉴스"에 광고를 게재했다. 이런 마케팅 전략 덕분인지 비교적 많은 매출을 올린 것으로 보인다.참고로 컴퓨터 관련 인터넷 사이트 중에는 4004의 트랜지스터 수를 2,250개로 표기한 경우가 있는데, 인텔의 공식 자료에 따르면 이는 2,300개다.

1971년

IBM, 8인치 메모리 디스크 개발

앨런 슈거트(Alan Shugart)가 이끄는 IBM 개발팀이 새로운 8인치 메모리 디스크를 개발했다. 새너제이(산호세)의 IBM연구소에서 개발된 이 메모리 디스크는 "멀린"이라는 IBM 3330 디스크 팩에서 마이크로코드를 읽어들이기 위해 고안되었다.
IBM이 8인치 플로피 디스켓을 개발하게 된 계기는 System/370의 저장 방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System/370은 실행 명령을 반도체 메모리에 저장, 문제가 생기면 컴퓨터를 다시 껐다 켜야 메모리 내용을 지울 수 있다. 그러나 컴퓨터를 껐다 켜면 메모리에 제어 프로그램을 다시 설치해야 하는 등 문제가 많다. IBM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렴하고 데이터 저장 방법도 쉬운 장치를 연구한 것이다.IBM은 철산화물 코딩을 입히고 80KB를 기록할 수 있는 메모리 디스크의 테스트를 System/370에서 이미 끝냈다고 밝혔다. 하지만 메모리 디스크 자체에 외부 면을 보호할 수 있는 보호재가 없어 데이터가 손상될 위험이 크고 다른 시스템에서 쓸 수 있을지 미지수여서 산업 표준으로 자리잡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 플로피디스크의 공식 기록과 비공식 기록 ≡

공식적으로는 IBM이 개발한 8인치 메모리 디스크가 컴퓨터에서 쓸 수 있는 최초의 플로피 디스켓이다. 하지만 비공식적으로는 이보다 4년 앞선 1967년에 IBM이 내놓은 제품을 최초의 플로피 디스켓으로 꼽을 수 있다.참고로 5.25인치 플로피 디스켓의 첫 공식 유통은 1976년 12월 IBM이 5.25인치 미니 플로피디스크를 390달러에 판 것이지만 실제 개발은 그보다 훨씬 전인 1972년 이루어졌다. 반면 3.5인치 디스켓은 1981년 소니가 개발과 동시에 IBM에 납품했다.

1971년


스페이스워!, 일반인도 즐긴다

MIT 학생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컴퓨터 게임 스페이스워!를 이제 아무나 즐길 수 있게 됐다. 나칭어소시에이츠가 스페이스워!를 바탕으로 한 게임, 컴퓨터 스페이스를 선보였기 때문이다.컴퓨터 스페이스는 2개의 레버와 버튼을 이용해 우주에 있는 적의 전함을 물리치는 게임으로, 게임 진행 방식은 스페이스워!와 비슷하지만 대형 컴퓨터를 다룰 줄 아는 일부 전문가만 즐길 수 있는 스페이스워!와는 달리 25센트를 넣으면 작동하는 코인 오퍼레이션 기기용으로 제작됐다.


≡ 최초의 상업용 게임 컴퓨터 스페이스 ≡

최초의 상업용 게임은 아타리의 퐁이 아니라 컴퓨터 스페이스다. 하지만 컴퓨터 스페이스는 사회적 인식이 부족하고 게임 방식이 어려워 판매량은 1,500∼2,000대 정도에 불과했다. 이 게임의 제작자인 놀런 부시넬(Nolan Bushnell)은 이후 선풍적인 인기를 모은 퐁을 개발한다.


1972년

제록스, 레이저 이용한 이미지 인쇄와 스몰토크

제록스의 PARC(Palo Alto Research Center)가 레이저를 이용하는 인쇄 기술을 개발했다. ROS(Raster Output Scanner)라고 불리는 이 기술은 레이저를 조종해 복사기의 드럼에서 전자 이미지를 만들어내며 인치당 500개의 점으로 이뤄진 인쇄물을 출력할 수 있다.제록스는 스몰토크(Smalltalk)라는 객체 지향형 프로그래밍 언어도 발표했다. 스몰토크를 이용하면 구문과 주소(Address)를 따로 독립시켜 놓은 객체를 다시 프로그래밍하지 않아도 다른 객체와 연결할 수 있기 때문에 프로그램을 훨씬 쉽게 만들 수 있다.제록스는 앞으로 ROS를 응용한 프린터를 개발하고 스몰토크를 배포해 나갈 방침이다.


≡ 레이저 프린팅 기술의 개발 ≡

제록스는 ROS 기술을 바탕으로 매년 10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으며, 1973년 개발된 최초의 레이저 프린터인 EARS(for Ethernet-Alto research character generator scanning laser output terminal)는 초당 1페이지를 인쇄하고 인치당 384개의 점을 표시한다.스몰토크의 객체 지향 프로그래밍은 훗날 C++과 자바 프로그래밍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1972년

인텔, 4004보다 2배 빨라진 후속 버전 8008 시판

인텔은 4004보다 기능이 2배 강화된 8008을 연내에 시판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8008의 트랜지스터 수는 4004보다 1,200개가 더 늘어난 3,500개이고 속도 역시 거의 2배가 빨라진 200kHz로 동작한다. 가격은 미정.


≡ 8008은 어디에 쓰였나? ≡

인텔의 공식 자료에 따르면 1974년 "라디오 일렉트로닉스"에 8008을 처리 장치로 채택한 "마크-Ⅰ"이란 PC가 등장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하지만 마크-Ⅰ은 생산과 유지, 운영 등의 문제가 많아 실제 판매는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추측컨대 이 기사는 마크-Ⅰ이 아닌 마이크럴(Micral)에 대한 기사인 것으로 보인다. 마이크럴의 가격은 1,750달러였으며 개인에게는 판매되지 않았다.


1972년

아타리, 비디오 게임 "퐁" 히트 조짐

아타리가 만든 게임인 퐁의 인기가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다. 퐁은 화면 양쪽의 막대를 위아래로 조정하면서 가운데에 있는 공을 맞추는 게임.비디오 모니터와 조종 장치가 한 세트로 구성된 퐁은 미국에서 큰 인기를 불러모은 핀볼 머신의 수익성까지 누르는 기염을 토했다. 핀볼 게임은 일주일에 50달러 벌이가 고작이지만 퐁은 이보다 4배에 달하는 200달러를 벌어들인다고. 이런 높은 수익성 덕분에 이제 퐁은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 만큼 흔한 게임이 되었다. 제작사인 아타리는 현재 일본과 퐁 수출에 관한 협상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참고로, 아타리는 컴퓨터 스페이스를 제작한 놀런 부시넬(Nolan Bushnell)이 테드 다브네이(Ted Dabney)와 500달러씩 공동 출자해 설립한 게임 전문 기업이다.


≡ 5년 뒤 500달러의 가치 ≡

퐁 개발 5년 뒤 아타리는 음반과 영화 전문 기업인 워너커뮤니케이션스에 매각된다. 이 때의 매각 금액은 자그마치 2,500만 달러. 아타리는 이를 자본으로 본격적으로 가정용 비디오 게임 사업에 뛰어들었다.
참고로 아타리는 "단수(單手)"라는 뜻을 가진 바둑 용어의 일본식 표기다.


1973년

제록스, 컴퓨터 화면에 그림 출력 시연

제록스가 현재 개발 중인 PARC 워크스테이션에서 비디오 영상을 출력하는 데 성공했다. 제록스는 지난해부터 PARC가 개발해 온 알토(Alto) 컴퓨터의 성능을 시험하다가 참깨에 쿠키 몬스터가 서 있는 이미지를 출력하는 데 성공했다. 현재 알토 컴퓨터는 개발 막바지 단계에 접어든 상태다.한편 제록스는 알토 컴퓨터의 화면에 나타나는 대로 인쇄하는 위지위그(WYSIWYG) 방식의 편집기, 브라보도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위지위그란 "What You See Is What You Get"의 줄임말로, 말 그대로 화면에서 눈으로 보는 것과 똑같은 출력물을 얻을 수 있다는 개념이다.


≡ 노트북 대신 최초의 워크스테이션 나오다 ≡

제록스의 앨런 케이(Alan Kay)는 1972년 노트북 두께의 다이나북을 설계했지만 제록스 경영진이 워크스테이션 개발을 강행했다. 결국 워크스테이션을 개발하느라 노트북 개발을 포기한 셈이다. 참고로 앨런 케이는 "미래를 내다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을 발명하는 것"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1973년

워즈니악, 전화 무료 이용 장치 몰래 유통

돈을 내지 않고 전화를 쓸 수 있는 장치가 일부 대학 기숙사 등을 중심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블루 박스(Blue Box)라고 알려진 이 장치는 스티브 워즈니악(Steve Wozniak)이 처음 만들었으며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 기숙사를 중심으로 은밀히 유통되기 시작했다. 전화기 발신음을 발생시켜 전화를 거는 이 장치는 무료로 전화를 이용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물론이고 불법 이용 사실이 발각되지 않도록 안전 장치까지 마련해 두고 있다고 한다.


1973년

512자의 영문자 저장 가능한 TV 타자기 발표

"라디오 일렉트로닉스" 9월호가 8008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이용한 TV 타자기, TV 타이프라이터를 소개했다. 돈 랜캐스터(Don Lancaster)가 디자인한 이 전자식 TV 타자기는 120달러어치의 전자 부품을 장착했으며 메모리 보드 2개에 줄당 32자씩 모두 16줄 512자의 영문자를 기록하고 출력한다. 보조저장장치인 90분짜리 카세트 테이프를 이용하면 100페이지 분량의 문자도 기록할 수 있다.


1974년

모토로라, 8비트 마이크로프로세서 MC6800 발표

모토로라가 8비트 마이크로프로세서를 발표했다. 모토로라가 이번에 발표한 MC6800은 인텔의 8008을 기초로 디자인했지만 실제 설계는 8080에 더 가깝다.8비트로 데이터를 전송하고 처리하는 MC800은 클록 속도 1MHz로 동작하고 어드레스에 64KB를 할당했으며 명령어 수는 78개에 달한다. 구조는 8080과 엇비슷하다. 차이점이라면 MC6800은 누산기(Accumulator) 2개 등 일부 레지스터 레벨이 다르다는 것 정도.


1974년

자일로그, 인텔의 8080 변형한 마이크로프로세서 Z80 출시

자일로그가 지난 7월 인텔 8080을 개선한 8비트 프로세서, Z80을 개발했다. Z80은 동작 클록 2.5MHz에다가 8비트 데이터 전송 능력과, 16비트 주소 체계의 8080 명령을 실행할 수 있는 호환성을 지녔다. 또 램 동작 신호를 조절하는 메모리 인터페이스와 CP/M 운영체제를 지원한다. 특히 레지스터 세트에 인덱스 레지스터 2개를 더 추가해 레지스터끼리 서로 데이터를 교환할 수 있도록 한 점이 눈길을 끈다.Z80을 만든 자일로그는 최근 설립된 반도체 회사로, 캘리포니아에 본사를 두고 있다.


≡ Z80은 장수 CPU ≡

8비트 CPU인 Z80은 8080을 개선한 모델로, 아직도 가장 널리 쓰이는 CPU로 꼽힌다. 예를 들면 휴대용 게임기나 대학에서 CPU 기초를 다룰 때 교육용으로 쓰인다. Z80의 개량 모델은 PDA나 마이크로마우스(로봇 쥐) 등을 제어하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1975년

MITS, 인텔의 8080 탑재한 알테어 8800 인기 상종가

지난해 MITS(Micro Instrumentation and Telemetry Systems)가 발표한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 알테어 8800의 주문이 폭주하고 있다.알테어는 "스타 트랙"에 등장하는 우주함 엔터프라이즈호의 최종 목적지에서 이름을 따온 컴퓨터다. 알테어 8800을 개발한 에드 로버츠(Ed Roberts)는 개인용 컴퓨터(Personal Computer)라는 표현을 하면서 제품 홍보에 열을 올렸다. 그 덕분인지 이 "최초의 PC"를 갖기 위한 사람들의 행렬이 줄을 잇는다고.

알테어 8800에 탑재된 인텔 8080은 작년 4월 선보였으며, 트랜지스터 6,000개를 바탕으로 2MHz의 클록 속도를 발휘한다. 알테어 8800은 기본 메모리(확장 4KB) 1KB와 케이스, 키보드 등을 포함해 385달러에 판매하는데, 현재 주문이 많이 밀린 상태라 이런 추세라면 판매량은 수만 대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빌 게이츠(Bill Gates)와 폴 앨런(Paul Allen)은 알테어 8800의 인기에 힘입어 알테어용 베이식을 제작, MITS에 라이선스를 넘기기도 했다. 참고로, MITS는 MIT대학의 에드 로버츠가 설립한 컴퓨터 개발회사.


≡ MITS와 8800의 운명≡

1977년 MITS를 인수한 퍼펙트가 알테어 8800의 생산을 중단한 것은 1978년이다.

1975년

IBM의 개인용 미니 컴퓨터 5100, 소비자들 외면

지난 9월 9일, 중대형 컴퓨터를 전문 생산하던 IBM이 소규모 기업을 겨냥한 컴퓨터 5100 시리즈를 발표했다. 5100 시리즈는 IBM이 1968년부터 카보래튼연구소 개발자 30명으로 이뤄진 ELS(Entry Level System)팀을 통해 야심차게 개발해 온 개인용 미니 컴퓨터다. IBM 5100은 IBM이 직접 설계한 IC를 사용하고 메모리 16∼64KB, 5인치짜리 모니터, 테이프 드라이브 204KB, 키보드 등을 모두 갖췄지만 무게는 60파운드(27kg)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미니 컴퓨터를 접한 소비자는 대부분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기본 가격 8,975달러에 메모리 추가 비용 2만 달러를 더해야 하는데다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려면 프로그래머를 따로 고용해야 하는 등 번거로운 점이 많기 때문이다.
이렇게 IBM 5100은 유지비가 제품 가격을 웃돌아 채산성이 맞지 않는 컴퓨터라는 지적이 많다. 하지만 IBM은 이런 의견을 무시하기라도 하듯 132열짜리 도트 프린터와 테이프 드라이브를 추가할 수 있는 새로운 5100 시리즈를 내놓을 계획.


≡ 이동성을 무기로 삼은 포터블 컴퓨터 ≡

IBM 5100은 최초의 이동형 컴퓨터다. 배터리가 없어서 AC 전원을 사용해야 했지만 모니터와 키보드, 저장장치 등이 일체형으로 디자인된 건 이 제품이 처음이다.


1975년

알파넷 이용한 상업용 네트워크 출현

알파넷(ARPANET)을 이용한 상업적 목적의 패킷 교환 네트워크가 나왔다. 텔넷이라고 명명된 이 네트워크 시스템은 래리 로버츠(Larry Roberts)가 고안한 것으로, 이미 7개 도시의 소비자를 한데 묶는 네트워크 서비스를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텔넷이 부가가치 통신망을 대표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1976년

애플Ⅰ 본격 시판, "사과 맛 좀 보세요!"

지난 3월 시장에 선보인 애플Ⅰ이 본격 판매에 나섰다. 애플은 12월부터는 미국 내 10개 상점으로 판매망을 확대하는 등 판매량 확보에 주력할 예정.애플Ⅰ은 스티브 워즈니악(Steve Wozniak)과 스티브 잡스(Steve Jobs)가 각각 휴렛팩커드와 아타리를 떠나 6개월 동안 컴퓨터 회로도와 씨름한 끝에 만든 개인용 컴퓨터다. 이 제품은 MOS테크놀러지의 6502 프로세서를 장착하고 모니터와 키보드를 입출력장치로 사용한다. 가격은 666.66달러.

애플Ⅰ은 시제품 작업이 끝난 뒤 제품에 붙인 정식 명칭으로, 당시만 해도 키보드와 케이스가 없고 그래픽 기능도 지원하지 않아 대량 판매에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스티브 워즈니악과 스티브 잡스는 애플Ⅰ의 시제품을 보고 케이스에 담아오면 대량 구입하겠다는 전자제품 가게 주인의 말을 듣고 본격 생산을 감행했다. 두 사람은 원래 휴렛팩커드에 생산을 의뢰했지만 휴렛팩커드가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자 아예 지난 4월 1일 만우절에 애플컴퓨터라는 회사를 차리고 자체 생산에 돌입한 것이다.

이들은 각각 밴 자동차와 휴렛팩커드 계산기를 팔아서 자본금을 마련한 다음 애플Ⅰ 50대를 바이트 컴퓨터 상가에 납품하고 광고를 게재하면서 본격 판매를 시작했으며, 놀란 부시넬과의 투자 상담을 거쳐 투자 자금을 유치했다. 회사 체계를 정비한 애플컴퓨터는 앞으로 10년 동안 매출 5억 달러 달성을 골자로 한 정식 사업안을 발표했다.


≡ 스티브 워즈니악의 인터뷰 ≡

질문 : 애플을 만들게 된 이유가 뭔가요?
스티브 워즈니악 : 알테어 8800을 살 돈이 없어서….
질문 : 근데 왜 애플로 이름을 지었죠?
워즈니악 : 먹다 남은 사과를 보다가 생각나서….


1976년

크레이, 세계 신기록 세운 슈퍼컴퓨터 개발

CDC에서 CDC 6600과 CDC 7600을 설계한 바 있는 슈퍼컴퓨터의 대부 시모어 크레이(Seymour Cray)가 회사를 나와서 직접 설립한 크레이리서치가 크레이(CRAY)-Ⅰ을 완성했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CDC 7600은 지난 4년 동안 누려온 "초고속 컴퓨터"라는 타이틀을 반납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1972년 개발을 시작한 크레이-Ⅰ은 단순한 벡터 처리 방식을 도입하고 배선 길이를 최대한 줄일 수 있도록 부품을 원통 형식으로 디자인했다. 또 스칼라(여러 개의 처리 장치에 작업을 배분해 속도를 향상시킴) 처리 때는 16메가플롭스(초당 실수 계산 1,600만 회 실행), 각 벡터 처리기(프로세서)가 최고 속도로 작동할 때는 160메가플롭스 속도를 낸다.
크레이-Ⅰ은 CDC-7600보다 4배 더 빠른 속도를 지닌 슈퍼컴퓨터로 58㎡의 크기에 무게는 2.4톤 정도.


1977년

코모도어, 애플Ⅱ와 흡사한 컴퓨터 출시

코모도어가 PET(Personal Electric Transactor)라는 이름의 컴퓨터를 출시했다. 이 컴퓨터는 MOS 6502 1MHz 프로세서에다가 기본 메모리 12KB, 카세트 드라이브 2개와 박막 치클릿(Chiclet) 키보드를 내장했다. 가격은 595달러.코모도어는 팻을 시작으로 1980년대 초까지 PC 산업의 흐름을 주도한다.


≡ 1977년에 IBM은 뭘 했지? ≡

1977년 IBM이 크기가 작은 64KB의 동적 램을 개발한 데 이어 1980년에는 텍사스인스트루먼츠가 64KB 동적 램을 만들어 큰 인기를 얻었다. 그 이듬해에는 커팅 에지(Cutting Edge)가 288KB 동적 램을 제작했다.

1977년

애플, 깔끔한 디자인의 고성능 애플Ⅱ 발표

애플컴퓨터가 6월부터 컬러 그래픽 디스플레이와 키보드, 전원공급장치 등의 기능에 세련된 디자인을 겸비한 신형 컴퓨터 애플Ⅱ를 판매한다. 이 회사는 이미 지난 4월 한 컴퓨터 전시회 출품을 계기로 대대적인 홍보에 들어간 상태.
애플Ⅱ는 기본 메모리 4KB에 게임 패드 2개, 데모 카세트 등을 장착하고 그래픽과 베이식 관련 애용을 대용량 메모리에 내장했다. 그 밖에 주변장치용 확장 슬롯과 CP/M 카드를 지원하는 등 매력적인 요소를 듬뿍 담았다. 가격은 1,299달러.
애플컴퓨터는 애플Ⅱ를 생산하기 위한 대규모 생산 라인과 테스트 라인을 준비하는 한편 잡지 광고 등 홍보에도 적극 나설 방침이다.


≡ 애플컴퓨터, 10개년 계획 5년이나 앞당겨 ≡

1976년 12월, 애플컴퓨터는 10년 동안 5억 달러 매출을 달성하겠다던 당초 계획을 전면 수정했다. 애플Ⅱ 시리즈의 판매 호조에 힘입어 5년 만에 목표한 매출을 달성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고무된 애플은 이후 유러플이라는 자회사를 차려 유럽 시장 공략에 나섰으며, 우리 나라에서는 1980년대 청계천 일대에서 애플Ⅱ의 복제판이 유통되기도 했다.


1978년

인텔, 개인용 컴퓨터를 위한 8086 프로세서 개발

인텔이 8비트 프로세서인 8085 설계를 바탕으로 4.77MHz 클록 속도를 지닌 8086 프로세서를 발표했다. 8086 프로세서는 데이터를 16비트로 전송, 처리하는 완벽한 16비트 제품으로, 3미크론 기술을 채택, 트랜지스터 2만 9,000개를 집적시켰으며, 메모리 1MB를 제어할 수 있다.


≡ 8086 프로세서의 개발 기간은 3주 ≡

8086 프로세서의 개발 기간은 불과 3주. 개발 인력도 엔지니어 2명이 고작이다. 8086 프로세서의 모델인 8085는 5MHz 클록으로 동작하는 8비트 프로세서로, 트랜지스터 6,500개를 집적시켰고 3미크론 기술을 적용했다. 참고로 최초의 16비트 프로세서는 1974년 내셔널세미컨덕터가 만든 PACE다.


1978년

개인용 운영체제 CP/M, 거의 모든 PC에 광범위하게 쓰여

CP/M(Control Program for Microcomputer)이 최근 선보인 거의 모든 8비트 개인용 컴퓨터의 운영체제로 사용되고 있다.
CP/M은 지난 1976년 컴퓨터 개발업체인 임사이가 미 해군대학원 개리 킬달(Gary Kildall) 교수에게 의뢰해 개발한 개인용 컴퓨터용 운영체제다. 이 운영체제는 중앙처리장치와 관계 없이 바이오스(BIOS : Basic Input Output System)에 시스템 입출력 기능을 일임하는 게 특징.

CP/M 개발자 개리 킬달은 CP/M의 성공에 힘입어 인터캘라틱디지털리서치를 직접 차리고 운영체제 관련 사업을 시작했다. 개리 킬달은 CP/M을 개발하기 전에도 인텔의 4004 프로세서용 PC/I를 만든 바 있으며, 인텔 8008 프로세서가 나오자 CP/M의 원조격인 PC/M을 내놓았다.


≡ 그 날 날씨만 나빴더라도 ≡

MS-DOS가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CP/M은 "가장 뛰어난 운영체제"라는 찬사를 받으며 승승장구했다. 개리 킬달이 지나치게 자만하지만 않았어도 그렇게 일찍 "쪽박"을 차지는 않았을 것이다.쪽박을 차게 된 사연은 이렇다. PC용 CP/M 개발을 의뢰하려고 찾아온 IBM 관계자는 개리 킬달이 자가용 비행기로 좋은 날씨를 즐기면서 그들을 기다리게 한 일에 격분했고 그 일 이후 IBM은 두 번 다시 개리 킬달을 상대하지 않았다. 물론 이런 일이 있기 전에도 개리 킬달은 IBM PC용 CP/M에 대한 권리를 인정해 달라는 등 분에 넘치는 요구를 계속해 IBM 관계자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마이크로소프트가 프로그래밍 언어 사업에 치중할 것이라는 개리 킬달의 오판도 그의 몰락을 앞당겼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개리 킬달과 IBM이 결별할 무렵 운영체제 사업에 손을 대 IBM을 잡는 데 성공한 것. 그 날 날씨만 나빴더라도 마이크로소프트의 운명은 지금과 180°달라졌을지도 모른다.참고로 IBM은 1983년 4월 IBM PC용 CP/M-86을 주문했지만 실제로 얼마나 사용했는지 확인된 내용은 없다.

1978년

애플컴퓨터, 애플용 저장장치 디스크Ⅱ 발표

지난 6월 애플컴퓨터가 한 가전제품 전시회에서 저렴하고 사용하기도 쉬운 미니 플로피디스크 드라이브인 디스크Ⅱ를 발표했다. 디스크Ⅱ는 카세트 테이프 대신 원형 자기 면에 데이터를 기록, 용량이 100KB가 넘는 수준.
애플컴퓨터는 디스크Ⅱ 생산을 위해 전담 직원 2명을 채용하고 매일 30개씩 디스크Ⅱ를 만들고 있다. 애플컴퓨터는 이와 함께 애플Ⅱ 사용자를 위한 전화 서비스를 개시할 예정.


≡ 디스크Ⅱ는 애플의 영양제 ≡

디스크Ⅱ가 나오자 애플용 소프트웨어가 봇물처럼 쏟아졌다. 덕분에 애플컴퓨터는 급성장을 거듭했고 "디스크Ⅱ가 없어서 못 파는" 품귀 현상을 맞으며 쾌재를 불렀다. 결국 애플컴퓨터는 디스크Ⅱ와 애플Ⅱ의 엄청난 판매량과 매출 덕분에(?) 주식을 공개해야만 했다.

1979년

내부 버스 개선한 인텔 8088 나와

인텔이 기존 8086을 개선한 8088 프로세서를 발표했다. 이 제품의 레지스터는 8086 프로세서처럼 16비트지만 외부 버스는 8비트. 16비트로 데이터를 전송하면 기존 8비트 주변기기나 프로그램과 호환되지 않는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8088 프로세서의 클록 속도는 4.77MHz과 8MHz의 2종


≡ 최초의 PC? IBM은 아닌데… ≡

최초의 PC는 뭘까? 1981년 나온 IBM 5150 PC가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그렇지 않다. IBM 5150 PC는 심지어 IBM 내에서도 최초가 아니다.PC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68년 휴렛팩커드의 911A PC라는 계산기 광고. 이 광고에서 PC라는 말이 처음 쓰였지만 엄밀하게 따지자면 계산기에 가까운 제품이어서 최초의 PC라고 부를 수 없다.컴퓨터 개념을 도입한 최초의 PC는 1971년 선보인 켄백-1이다. 당시에는 구입은 물론 유지하기도 벅찬 고가의 제품이었지만 최초의 PC인 건 확실하다. 그 뒤 1974년 알테어 8800, 1976년 애플Ⅰ, 1978년 애플Ⅱ 등이 개인용 컴퓨터의 명맥을 잇는다. 하지만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까지는 PC 생산 업체가 100개로 늘어난데다 시장 규모도 수십억원대로 성장해 제품을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들다.하지만 이렇게 수많은 개인용 컴퓨터 가운데 IBM PC가 지금까지 PC의 표준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비결은 폐쇄적인 다른 제품과 달리 모든 구조를 개방했기 때문이다.


1979년

애플컴퓨터, 메모리 보강한 애플Ⅱ+ 시판

애플컴퓨터는 오는 6월부터 애플Ⅱ의 메모리를 48KB로 늘린 새로운 모델 애플Ⅱ+를 판매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애플 사용자는 16, 32, 48KB 등의 메모리 중에서 원하는 용량을 고를 수 있게 됐다.
애플Ⅱ+는 이외에도 베이식과 시동 부팅 롬을 포함했고 스크린 편집 작업을 한층 손쉽게 바꾸는 등 상당 부분을 개선했다. 가격은 1,195달러.한편 애플컴퓨터는 사일런트타입(SilentType)이라는 프린터를 판매할 예정. 이 프린터는 트렌드컴(TrendCom)의 모델 200에 애플컴퓨터 로고를 붙여 파는 것으로 가격은 600달러선.


≡ 웜의 출현 ≡

제록스 PA.0RC의 존 쇼크(John Shoch)와 존 후프(Jon Hupp)가 1979년 네트워크 작업이 느려지게 만드는 웜이라는 간단한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1979년

헤이즈, 애플용 마이크로모뎀 100 출시

헤이즈(Hayes)가 애플용 내장 모뎀을 출시했다. 헤이즈가 출시한 마이크로모뎀(Micromodem) 100은 최저 속도에서 초당 100개의 문자를 보낼 수 있고 최고 속도에서 300bps로 동작한다. 또 신호에 따라 모뎀으로 자동 전환하거나 전화기로 신호를 보내는 기능을 갖고 있으며 전화 걸기와 통신은 컴퓨터에서 프로그램 조작으로도 처리할 수 있다.


≡ 외장형과 내장형 모뎀 ≡

헤이즈 모뎀의 등장은 외장형 일색이던 모뎀을 내장형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고 보급률이 늘어나면서 산업 표준으로 자리잡았다. 참고로 1973년 웨스턴유니콘이라는 회사가 100bps 외장형 모뎀을 개발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사실이라면 외장형 모뎀의 시초 격이 된다.


1979년

모토로라, 16비트 마이크로프로세서 MC68000

모토로라가 마이크로프로세서 MC68000을 발표했다. "트랜지스터 6만 8,000개를 집적시켰다"는 뜻의 MC68000은 8MHz 클록 속도로 작동한다.모토로라는 16비트 데이터 전송이 많은 현실을 감안해 초기 32비트 프로세서를 3가지로 나누어 개발할 예정이다. MC68000은 그 첫번째 모델로 16비트 레지스터와 데이터를 전송한다.


1980년


IBM, 신형 마이크로컴퓨터 개발 중

IBM의 새로운 컴퓨터 개발 계획이 상당 부분 진척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 계획은 작년 6월부터 준비해 올해 7월 프로젝트 체스(Project Chess)라는 암호명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IBM의 기업경영위원회(Corporate Management Committee)는 체스 프로젝트에서 개발 중인 마이크로컴퓨터의 이름을 어콘(Acorn)으로 정하고 부품 조달을 시작하는 등 많은 진척이 있었다고 말했다.

IBM의 어콘은 모토로라의 68000과 내셔널세미컨덕터의 16032, 인텔의 8088 가운데 하나를 처리 장치로 쓸 것인데, 이 가운데 가장 유력한 것은 인텔의 8088인 것으로 알려졌다. 모토로라의 68000은 소프트웨어 제작이 쉽고, 내셔널세미컨덕터의 16032는 성능이 뛰어나지만 프로세서를 지원 칩이 모자란다는 게 단점이지만, 인텔 8088은 컴퓨터를 만들 수 있는 모든 부품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인텔 8088은 1978년 발표한 8086의 후속 버전으로, 외부 데이터 버스를 16비트에서 8비트로 바꿔 호환성을 향상시킨 16비트 프로세서다. 동작 속도는 4.77MHz이며 메모리 1MB를 제어할 수 있다.

≡ 어콘=IBM PC ≡

모든 부품을 최저가 입찰 방식으로 사들여 개발비를 크게 낮춘 어콘은 훗날 이름을 IBM 5150 PC로 바꾸고 IBM PC 시대의 서막을 연다.
어콘을 개발한 프로젝트 체스는 12명의 엔지니어가 모였다는 뜻에서 일명 "더티 도즌"(Dirty Dozen)이라고 불렸으며 플로리다의 보카러턴(Boca Raton)을 본거지로 활동했다.


1980년

시게이트테크놀러지, 마이크로컴퓨터용 하드디스크 "곧 팝니다"

시게이트테크놀러지가 마이크로컴퓨터용 하드디스크인 윈체스터를 발표했다. 모델명이 ST-506인 윈체스터는 5.25인치 크기의 소형 하드디스크로, 용량은 5MB이며 플로피디스크 드라이브에 끼워서 사용한다. 하드디스크는 금속 판(Metallic Platter)의 양면에 자성 물질을 입혀서 데이터를 기록한다. 그 동안 대형 컴퓨터에서나 사용하던 고급 저장장치 방식을 옮겨온 것이다.
시게이트테크놀러지는 앨런 슈거트(Alan Shugart)와 피니스 코너(Finis Conner)가 공동 설립한 법인. 이 회사는 이미 IBM과 동업자 관계를 유지하며 5.25인치 플로피 디스켓을 개발한 바 있다. 윈체스터 하드디스크의 판매는 슈거트가 맡을 예정이다.


≡ 보잘 것 없는 5MB? ≡

지금이야 5MB가 정말 보잘것없는 용량이지만 처음 선보일 당시에는 충격적인 크기였다. 하드디스크 5MB는 수 년 동안 애플과 IBM 등을 통해 400만 개 이상 팔려나갔다.


1980년

소니/필립스, 콤팩트 디스크 표준안 확정

소니와 필립스가 레이저로 음악을 재생하는 콤팩트 디스크 표준안을 확정하고 이를 적용한 콤팩트 디스크를 본격 생산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제 빛을 이용해 깨끗한 음질을 지닌 음악을 들을 날도 멀지 않은 듯.

표준안에 따르면 콤팩트 디스크는 직경 12cm에 44.1kHz로 샘플링된 16비트 PCM 스테레오 음악을 74분간 저장할 수 있다. 콤팩트 디스크는 데이터에 대한 정보를 담은 Lead In과 음악이 저장되는 프로그램, 그리고 세션이 끝났음을 알려주는 Lead Out 등 3개의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데이터는 콤팩트 디스크의 안쪽부터 바깥쪽으로 나선형으로 돌아가며 기록된다. 디지털오디오디스크위원회(Digital Audio Disc Committee)는 빠른 시일 내에 이 표준안을 업계 표준으로 승인할 예정이다.

콤팩트 디스크의 표준안이 마련되기까지 많은 난관이 있었다. 콤팩트 디스크는 1977년 일본의 도쿄 오디오 전시회에서 미쓰비시와 히타치, 소니 등이 디지털 오디오 디스크 시제품을 선보이고 그 이듬해인 1978년 디지털 오디오 디스크 컨벤션에 필립스를 비롯한 35개 업체가 콤팩트 디스크 오디오를 출품하면서 시장성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디지털 오디오 디스크 시장이 과열 조짐을 보이고 제조 방식이 다른 디지털 오디오 디스크가 쏟아져 나오자 필립스가 업계 표준안 제정을 제의했다. 그러다 작년, 소니는 필립스의 제안에 협력한다는 조건으로 자사 규격의 16비트 샘플링 방식과 1960년 고안된 리드-솔로몬 에러 검출 코드를 담은 표준안을 완성했다. 이 표준안이 완성되기 전까지는 11.5cm의 콤팩트 디스크를 썼는데, 업체마다 레이저 구동 방식이 달라 문제가 많았다.

한편 음반업계는 이번 콤팩트 디스크 표준안 제정으로 현재 LP와 카세트 테이프 위주의 음반 시장이 콤팩트 디스크 시장으로 재편될 것으로 판단, 이에 철저히 대비할 것이라고 밝혔다.

≡ 레드 북이라 부르는 이유 ≡

콤팩트 디스크 표준안은 레드 북(Red Book)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는 콤팩트 디스크의 기술적인 문제를 정리한 문서의 표지가 붉은색인 데 착안해 붙인 것이다.
레드북이라는 별칭은 1985년 8월 표준으로 확정되면서 쓰였지만 국제 표준 기구(ISO)의 승인을 받은 건 아니다.

≡ 콤팩트 디스크 개발의 역사 ≡

콤팩트 디스크에 채용한 기술은 매우 많지만 그 가운데 핵심이 되는 기술만 몇 가지만 추려 소개한다.
1937년 A. 리브스(A. Reeves)가 최근까지 사용된 펄스 부호 변조(Pulse Code Modulation) 기술을 개발했다. 그보다 한참 뒤인 1950년 리처드 W. 해밍(Richard W. Haming)이 에러 교정과 검출 코드를 제작했지만 실제로 이용되지는 못했다.그러다가 1958년에 레이저가 개발된 데 이어 1960년에는 I. S. 리드(I. S. Reed)와 G. 솔로몬(G. Solomon)이 에러 검출 코드를 완성했다. 이 리드-솔로몬 코드는 소니의 제안으로 콤팩트 디스크 표준안에 포함된다.1967년에는 NHK기술연구소가 30kHz로 샘플링된 12비트 PCM 디지털 오디오 리코더를 시연했는데, 이 때 디지털 오디오는 비디오 테이프에 저장되었다.

소니가 2인치 비디오 테이프에 47.25kHz로 샘플링한 13비트 PCM 음원을 저장한 것은 1969년의 일이다. 같은 해 독일의 물리학자 클라스 콤판(Klass Compann)이 콤팩트 디스크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시한다.1970년에는 필립스의 피트 크라머(Pete Kramer)와 클라스 콤판이 콤팩트 디스크의 기원이 되는 유리 디스크(Glass Disc)를 완성했으며, 그로부터 2년 뒤 드디어 새로운 콤팩트 디스크 기술이 탄생한다.콤팩트 디스크는 그 후에도 한참 동안 BBC를 비롯한 일부 방송에서 디지털 오디오 방송에 주로 사용됐다. 일반인에게 디지털 오디오가 선보인 것은 1977년에 이르러서다.참고로 소니는 자사의 PCM 처리 기술을 응용해 PCM-1600과 PCM-1이라는 오디오 처리 칩을 판매하다가 콤팩트 디스크가 1979년 업계 표준안으로 확정되면서 엄청난 기술료를 챙겼고, 필립스는 자회사인 폴리를 통해 콤팩트 디스크의 재료인 폴리카보나이트를 판매했다.


1980년

애플Ⅲ에서 치명적 결함 발견돼

애플컴퓨터가 고급 업무용 컴퓨터로 발표한 애플Ⅲ 성능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애플Ⅲ은 지난 5월 발표된 애플의 최신 기종으로, 2MHz로 작동하는 MOS 6502A와 256KB 램, 최대 16색상을 표시할 수 있는 다채로운 그래픽 모드, 확장 슬롯 4개 등을 채택하고 SOS(Sofisticated Operating System)라는 뛰어난 운영체제를 쓰고 있다.하지만 애플Ⅲ은 내부 열을 방출하지 못하는 치명적인 결함을 안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케이스 내부의 열이 빠져나가지 못하면 갖가지 부품에 영향을 주어 프로그램 오류를 일으키고 심지어 작동 자체가 불가능해지기도 한다. 이에 대해 애플컴퓨터는 원인을 분석하는 중이라고만 말할 뿐 아직 뚜렷한 대안을 내놓지 못한 상태다.


≡ 그래도 4년은 버텼다 ≡

애플Ⅲ은 출시 이후 갖가지 문제점이 발견됐음에도 판매 중지 같은 극단적인 조치는 피할 수 있었다. 애플컴퓨터는 애플 시리즈의 연속성을 이어가기 위해 1983년 12월, 문제점을 개선하고 새로운 비디오 인터페이스를 갖춘 애플Ⅲ+를 발표했지만 결국 애플Ⅲ과 Ⅲ+는 1984년 3월 생산이 중단되었다.


1980년

필립스, 레이저 이용한 저장장치 발표

필립스가 5.25인치 플로피디스크보다 용량이 60배 이상 많은 광저장장치(Optical Data Storage)를 개발했다. 이 저장장치는 레이저를 이용해 디스크의 표면에 지워지지 않는 흠집을 내는 방식으로 데이터를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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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art